턱 떨어진 귀신과 달걀 귀신
‘턱 떨어진 귀신’ 이야기는 구전되는 기담중에 하나인데, 나는 어릴적 실제로 누군가 겪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외할머니께서 들려주시던 옛날 이야기 속에서는, 외할머니의 할머니(외고조모님)께서 젊은 시절에 이 턱 떨어진 귀신을 만났다는 것이다. 외할머니께서 100여 년 전에 태어나셨으니 그러면 1870-1880년대 쯤이 되는 건가? 언제나 외갓댁에 갈 때는 우리들은 꼭 “할머니, 옛날 이야기 해주세요.” 했었고. 외할머니는 똑같은 이야기를 수백 번을 하셨을텐데 단 한 번도 마다하지 않고 손자들을 끌어다 앉혀 놓고 들려주셨다.
서울 삼각지에 있던 외갓댁은 일본식 집이였다. 문패를 다는 것이 일반적이였던 때라 외할아버지의 함자가 담긴 나무 문패가 문 밖의 오른쪽 벽에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 외할아버지의 함자는 ‘일’자 ‘성’자 셨는데, 그렇다 북쪽의 그 인물과 한자까지 완전히 똑같다. 그래서 아직 냉전시절이던 때에 그 문패를 보고 있으면 서늘한 느낌이 들곤했다. 현관에 들어서면 어른 너댓 명이 있을 만한 네모난 공간과 신발장이 있었고, 무릎보다 높은 마루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욕실과 사랑방으로 통하는 문과 복도가 이어졌는데. 평면도로 투영해 본다면, 집은 두 개의 복도를 남쪽과 북쪽에 두고 그 끝에 방들이 있어서 중앙의 제일 큰 방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현관 마루에서 시작되는 북쪽 복도는 빛이 들지 않고 어두워서, 불을 켜지 않으면 그림자 안에 누군가 숨어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복도 끝에 있던 두 개의 방은 이모들이 사용하고 그 사이엔 꽤 큰 부엌이 있었는데. 잔치가 벌어지면 여기서 만든 온갖 음식들을 나르느라 친척들과 이모들이 분주히 드나들던 곳이기도 하다. 이모들이 있던 방의 오른쪽을 돌아서 나가면 마당으로 통하는 문이 있어서 여름이면 언제나 시원한 바람이 불어들어왔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지내시던 사랑방에는 작은 책상 겸 화장대와 어린 내가 열기엔 정말 무거운 미닫이 문으로 된 큰 자개장이 있던 것이 생각난다. 외할아버지가 언제나 앉아서 책을 읽으시던 책상엔 커다란 돋보기와 온갖 신기한 물건들로 가득했었다. 대부분 문방구류였는데 펜 종류가 여러가지 있었고 펜의 끝에는 동물이나 사람 모양의 재미있는 장식이 있었다.
십 남매를 두셨던 외할아버지는 일제 시대 교육을 받은 엘리트로 한전에서 근무를 하시고 정년 퇴임을 하셨었다. 그 시절 외갓댁에는 1960년대부터 전축이 이미 집에 있어서 사교댄스를 배우기도 하시고 수시로 손님들이 찾아와 잔치를 했었는데. 뭐 일단 그 많은 아이들을 모두 대학교육을 시키실 수 있었던 외할아버지는 사실 슈퍼맨보다도 더 강력한 능력을 소유했던 분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말씀도 없고 표정도 없으셔서 손자들 기억에 외할아버지는 정말 무서운 분이셨다. 방 안은 언제나 깨끗이 정돈되어 빈틈이 없었는데, 심지어 담배꽁초들도 재떨이 안에 똑같은 키로 나란히 줄을 세워서 놓아두셨었다. 말씀이 없는 것은 외할아버지 친구분들도 비슷했는데. 가끔 오시던 친한 친구분은 같이 식사하시고 이야기 조금 하시다가 나란히 같이 방에 들어가셔서 낮잠을 주무시는 것이 같이 즐기시는 것의 전부였다. 오죽하면 외할머니께서 생전에 “난 다시 태어나면 말 많이 하는 영감하고 살 것이다.” 라고 하셨을까? 이렇게 무서운 외할아버지가 나는 어느 때인가 부터 좋았었는데 중학교 2학년을 외갓댁에서 다닌 다음부터였던 것 같다. 무서운 분이 아니라 그냥 말씀이 없어서 그 마음 안에 따뜻한 부분을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이런 과묵한 남편을 두셨던 우리 외할머니의 이야기는 어느 여름날 간유리로 된 미닫이 문이 있던 방의 한 구석에서 시작되곤 했다.
외할머니 버전의 턱 떨어진 귀신
외고조모님께서 어느 날 저녁 부엌에 물이 떨어진 것을 아셨다. 수돗물이 있을리 없던 시절 물을 다시 긷기 위해 어스름해지는 길을 나서서 동네 우물가로 가셨다고 한다. 한참만에 물을 다 채운 양동이를 다시 이고 출발하려고 하시는데, 저 멀리서 왠 사내가 숨을 헐떡이며 우물가로 달려왔다.
동네 안이긴 했지만 여자 혼자 무섭기도 하고 여차하면 두레박으로 내려칠 심산이셨는데. 그 사내가 “여보! 아주머니! 나 물 한 바가지만 주슈. 내 목이 너무 마르다오.” 라고 했단다. 그래도 말을 하니 다행이나 싶어서 물을 냉큼 한 바가지 퍼서 주셨는데, 아니 이 남자가 물을 제대로 마시지는 않고 모두 흘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아니 물을 그렇게 마시면 어떻게하오? 다 흘리네.” 하시니 그 사내가 빨간 눈을 크게 뜨고 할머니를 쳐다보면서 “내가 바로 턱 떨어진 귀신이오!” 했다. 그 소리에 너무 놀란 할머니는 걸음아 나 살려라 집으로 오셨고, 다음날 아침 나가보니 왠 몽당 빗자루가 하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달걀 귀신은?
아마 나는 외할머니가 해주신 이야기에서 우리나라 도깨비에 대한 이미지가 생긴 것 같다. 부리부리한 눈을 갖고 있는 덩치가 큰, 물을 마시면 턱이 없어서 다 흘리는 사내. 이 이야기에 이어서 언제나 해주시는 더 무서운 이야기. 달걀귀신 이야기는 외할머니께서 직접 겪으신 이야기라고 하셨다.
외할머니의 친가는 부평이다. 맞다 지금 인천옆의 부평이 그 곳이다. 아파트가 빼곡이 들어선 지금은 자취도 없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나도 그 곳에 가서 개구리와 송사리도 잡던 논과 밭이 있던 소위 시골이였다.
한 90년 전 그 곳 부평에서 결혼도 하시기 전 어느 여름날, 어린 외할머니는 친구들을 만나고 늦게 집에 돌아오는 길이였다. 마을에 들어서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 돌아보니 왠 작은 불꽃 같기도 한 달걀만한 것이 빙글 빙글 돌면서 저 뒤에 있는 것이 아닌가? 붉었다 푸르스름했다 이상한 빛을 뿜으며 마치 춤을 추는 듯 누군가를 비웃는 듯 희롱하고 있었다. 왠지 꺼림칙한 생각이 들어서 흘끔 흘끔 보면서 걸어가는데 그것들이 점점 쫓아오는 것이 아닌가? 그 때부터 외할머니는 냅다 집까지 달렸다. 집에 가까이 와서 저 멀리 대문이 보이는데 문이 잠기지는 않았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숨이 차는지 땀이 나는지 느낄 틈도 없이 대문 앞에 이르러서는 있는 힘껏 확 몸으로 빗장을 밀쳤는데. 다행히 잠기지 않았었고 얼른 뒤돌아 문을 걸어 잠근후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외증조부가 딸이 늦게 헐레벌떡 들어오는 것을 보셨고. 외할머니는 그 이상한 놈이 아직 있나 확인하려고 “아버지. 저 잠깐만 대문 앞에 보고 올께요.” 하고 다시 나갔다. 물론 딸이 다시 나가려는 줄 알고 외증조부는 노발대발하셨다. 살금살금 대문 앞에 가서 문틈으로 밖을 살며시 보는데. 그 불꽃같이도 한 동그한 것들이 아직도 그 앞에서 ‘달달달달…’ 거리며 있었다. 외할머니는 기겁하고 얼른 집안으로 다시 들어왔고 밤새 무서워서 혼났다고 한다. 과연 그때 그 이상한 놈은 뭐였을까?
2019년 두 분의 근황
기억 속의 두 분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은데 벌써 돌아가신지도 20년을 훨씬 넘겼다. 한 분은 5월의 따뜻한 시절 먼저 가셨는데, 가만히 눈을 감으면 두 분은 기억에서 나오셔서 그 손과 얼굴이 만져질 듯하다. 평소 술을 한 잔 하시면 얼굴이 붉게되셔서 기분이 좋아지셨던 외할아버지는 우리 친할아버지와 친구가 되어 큰 대문집의 잔칫상 한 가운데 같이 앉아들 계실 것 같다. 물론 외할머니는 말씀과 달리 외할아버지 곁에 같이 계시지 않을까? 아마 말씀도 많아지신 외할아버지의 마음을 모두 이제는 아실 것 같다.
Present
과거와 현재를 두고 언제가 더 좋은지 이야기 할 때가 있다. 사람들 성격을 파악하는데 이만한 방법도 없다는 생각도 한다. 누군가는 지금이 더 좋다고 하고, 어떤 이는 과거가 더 좋았다고 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후자쪽이 더 많은 것 같다. 그 이유는, 내 생각엔, 본인이 기억하고 싶은 형태로 왜곡해서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본성 때문인듯 하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우리의 본성탓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고 하지만.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가르침은 과연 우리가 어디를 기준으로 살아야 할지 많은 것을 알려준다. 더 나아가서 우리 삶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생생히 드러내고 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희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코린토 2서 6장 2절>
과거는 보다 나은 현재를 위해서 우리에게 교훈을 알려주는 선생과 같은 것이고, 미래는 현재보다 더 나은 우리가 지금 이순간 바라보고 꿈꾸는 이상 그것이다. 그 미래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해 현재가 존재하고 지금 이 순간(현재)에 행복과 성공을 이루다 보면 언젠가 다가올 나의 현재(미래)는 더 큰 행복으로 다가 올 것이다.
Present (Spencer Johnson)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